엘라는 영화나 책의 비극적인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꿔 올리는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그녀의 블로그 '더 나은 결말'은 높은 조회수를 자랑했다. 그녀는 자기 삶 역시 행복한 결말로 향해 가야 한다고, 또 분명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엘라에게 비극적이고도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으니 사건은 약혼자 필립의 코트 주머니에서 이상한 쪽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필립에게. 당신은 엘라하고 결혼하면 안 돼요! 엘라가 꿈속에 살고 있는 몽상가이고 평생을 함께할 상대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우리가 함께 보냈던 밤에 말했잖아요. 제발 당신 자신을 위해 그 결혼은 그만둬요! - 당신의 C 엘라는 쪽지가 사실이 아니라고 애써 믿으려 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헐레벌떡 들어온 약혼자는 다짜고짜 코트부터 찾았다..
평소처럼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 나야." ".............." "얘기해." ".............." "뭐야, 전화해놓고. ........여보?"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것이 숨소리인지 바람 소리인지 알 수 없다. ".......여보, 무슨 일이야?" 한참 뒤에야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나한테 이러는 거 아니야." "무, 무슨 말이야, 갑자기?" 그때 도로 맞은편에서 기사 식당을 하는 동생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형, 형수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있다는데?" "무슨 소리야, 지금 나랑 통화 중이야......." "아니, 옥상 난간에 올라서 있다고요! 금방이라도 떨어지려고 하는 사람처럼. 우리 마누라가 얼른 가보라고 한다고요!" ..
"인조인간 아웃팅 저눈 기자 최 기자가 또다시 특종을 잡았습니다.! 최고 인기 가수 스트레이트가 사실 인조인간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역사책에 의하면 50여 년 전, 인류는 자꾸만 줄어드는 인구수에 큰 위기감을 느꼈다. 결국, 인류는 인조인간을 창조했다. 사회 속으로 녹아든 인조인간은 그야말로 감쪽같아, 그 누구도 차이점을 알아채지 못했다. 심지어 인조인간 본인조차도 본인이 인조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죽음에 근접할 정도의 큰 사고를 겪었을 때 인조인간은 아예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인조인간들은 자신이 인조인간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았는데 그것은 보통 인간들의 차별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쉽게 웃음거리와 가십거리가 되었으며 어딜 가나 못마땅한 눈초리와 형편없는 대우..
부검실에 누워 있는 시신의 아래턱은 턱관절에서 제거되어 있었다. 위턱을 떼어낸 것과 동일한 방식이었다. "사망자는 중부 유럽인 여성이고, 장기 상태로 보아 연령은 50세에서 60세 사이로 추정됨." 나는 녹음기에 대고 말했다. 많은 범죄자가 할리우드 영화나 탐정소설을 보고는 시체의 치아 전체를 뽑아버리면 희생자의 신원을 완전히 숨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는 다르다. 그런 면에서 위아래 턱과 양손이 제거된 이 시체는 전문가의 솜씨가 분명했다. 해부를 진행하고 있을 때, 동료가 다가와 CT촬영 결과를 보여주었다. "CT촬영 결과 보시겠어요? 여기 이물질 보이세요?" 그녀의 말대로 시신의 해골 안에는 땅콩보다 작은 크기의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머리를 쏘았나...?' 나는 시체 머리 위..
남자는 아내와 심하게 다투고 집 밖을 서성였다. 곳곳에서 먼저 도착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그런 저녁이었다. 길을 걷던 그는 붉은빛의 네온사인이 빛나는 어느 술집 앞에 문득 멈춰섰다. 그러곤 충동적으로 몸을 틀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의 바에 자리를 잡은 남자는 옆에 앉은 한 여인을 쳐다보았다. 우울하고 딴생각을 하는 듯한 눈빛의 여인은 바 전체를 환히 밝히는 듯한 화려하고 선명한 빛깔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어떠한 충동에 휩싸인 그는 지갑 안에서 작고 길쭉한 봉투를 끄집어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저녁 아내와 함께하려 했던 공연 티켓이었다. 여자와 몇 마디를 주고받던 남자는 그녀에게 물었다. "카지노 극장에서 열리는 공연 특별석 티켓입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남자의 제안을 ..
이곳은 환생동물학교. 인간으로 환생하려는 동물들이 꼭 거쳐 가야 하는 곳. 동물들은 이곳에서 인간들의 삶에 대해 배우며, 동물의 본성을 지워간다. 신발 뜯기, 발로 긁기, 물기 등등 인간이 하지 않을 행동을 하면 즉시 가르쳐 못하게 해야 한다. 꼬리가 없어지면 환생할 준비가 됐다는 증명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내가 배정받은 AH-27반의 아이들이다. "간다!!" 우아아아! "안 돼!!" "던진 애가 달려가면 어떡하냐!" "이허는 어헐후 이헛어." "참을 수가 없단 말이야." "맞아! 어떻게 공이 날아가는데 참아! 우리 사람 되기 글렀다..." "근데 블랭키, 넌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안 움직일 수가 있어?" "어.. 그게... 사실은 공놀이를 해본 적이 없어서..." "너, 무슨 강옥에라도 갇..
그 돈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평소에 교류가 없던 형과 나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생일마다 함께 묘지에 방문했었다. 그 날은 형의 절친한 친구인 루와 형이 키우는 개도 함께였다. 아버지의 묘지로 향하던 중 어디선가 여우가 닭을 문 채 차 앞으로 튀어나왔다. 급하게 세운 차는 도로 가장자리 쌓인 눈에 처박혔다. 우리는 곧장 내려 차를 살폈다. 다행히도 차는 헤드라이트만 깨져 있었으나 문제의 형의 개가 여우를 쫓아 숲속으로 사라진 것이었다. 개를 찾기 위해 우리는 눈 쌓인 숲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개를 찾던 중 뜻밖에도 눈에 덮여 모습을 거의 숨긴 경비행기 한 대를 발견했다. 추락한 듯한 비행기의 내부엔 조정석에 앉아 있는 시체와 지폐뭉치가 잔뜩 들어있는 더플백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신고해야 ..
모리타에게 전화가 온 건 일주일 전이었다. "다음 주에 점심이나 같이할까. 긴히 할 말이 있어. 너와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야." 오랜만에 만난 모리타의 모습은 어딘지 달라 보였다. 그의 파마를 한 긴 머리칼은 참신했지만 눈 밑의 거뭇한 그늘이 마음에 걸렸다. 옛날얘기를 나누며 식사한 후 나와보니 거리는 온통 북새통이었다. 총리의 퍼레이드가 이 도시에서 있다더니 그 때문이었다. 문득 잠에서 깼다. 자동차 조수석에서 깜빡 잠들었음을 깨달았다. 모리타는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쥔 채 앞을 보고 있었다. 식사 후 함께 거리를 걷다가 모리타가 일이 있어서 곧 가야 하니 본인 차에서 마저 이야기를하자고 했고, 차 안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페트병을 꺼냈다. "마셔." 입을 댄 것까지만 기억난다. "뭔가 탔지?" 내가 ..
그녀는 성격이 좋았다. 싹싹하고 시원시원했다. 직원들 누구나 그녀와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업무상 그녀와 접촉할 일이 잦은 나를 부러워한 동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내게 정식으로 그녀를 소개해달라는 놈들도 있었다. 물론 모두 거절했다. 내가 왜 승낙하겠는가. 나도 보고만 있는 처지인데 말이다. 하루는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안 좋아 보이네요." "별일 아니에요." "말이나 한번 해봐요, 혹시 도움이 도리지 모르잖아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멋쩍은 듯이 웃었다. "바르셀로나가 졌거든요." 심지어 축구를 좋아하다니! 며칠이 지나 회사에 회식이 있던 날, 3차까지 이어진 자리가 끝나고 그녀와 나는 축구 얘기를 하며 술을 한 잔 더 했다. 그 날 이후 우리의 관계는..
'이번엔 제발 괜찮은 기사님 만났으면 좋겠다.' 택시를 탈 때마다 긴장하며 하는 생각이다. 불친절한 기사님 중에는 자꾸 정치적 이슈를 꺼내 논쟁하려는 사람, 화난 듯 말하는 사람, 난폭 운전을 하는 사람, 사적인 이야기를 캐묻는 사람 등이 있다. 이런 경험을 이야기하면 여자들은 대부분 공감하면서 자신들도 택시를 탔을 때 편치 않은 경험이 많았다고 한다. 반면 남자들은 불쾌한 경험을 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라 신기했다. 성별을 떠나 이런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불쾌한 경험이 없었다는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는데 한쪽은 "나는 그런 적이 별로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잘 모르지만, 잘 모르니까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에이, 그럴 리가. 네가 예민한 거 아니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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